By Paul Cox; Distributed by Sire Records – 991.com No copyright markings visible with photo.Higher resolution photo scan here., 퍼블릭 도메인, 링크
(출처)
70년대 말 펑크의 소진과 함께 뉴 웨이브 팝이 영국 대중음악계를 휩쓸 무렵, 주류 팝 시장은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전자 음악의 홍수로 80년대 팝 음악시장의 모습을 갖춰나간다.울트라복스, 휴먼 리그같은 밴드들이 표방한 신스 팝은 이윽고 듀란 듀란, 컬처 클럽, 왬 등의 아이돌 스타들에 의한 세련된 포장으로 변신한다. MTV의 등장은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가져왔고, 주류 팝 시장에선 음악성보다는 외모와 무대 매너로만 음악인의 자질을 판가름하는 경향이 점차 농후해 졌다.
여기서 소개할 80년대 맨체스터 사운드는 바로 이런 당시 영국 주류 팝 시장의 소모적이고도 치열한 ‘음악 팔리기’에 대해 저항하며 맨체스터라는 영국 북부의 공업 소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한 인디 밴드들의 음악 스타일을 통칭해서 말한다. 영국 내에서 보면 한갓 지방도시에 불과한 이 지역을 거점으로 바로 본격적인 영국 얼터너티브 록 씬의 맹아가 형성되었다.
맨체스터 내의 밴드들은 그들만의 ‘지역성’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 색깔을 지니려고 했고 80년대 영국 얼터너티브의 발화점으로서 바로 이 맨체스터를 꼽는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 하다. 80년대 당시 활동하던 맨체스터 출신 밴드들 중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던 밴드들론 스미스, 뉴 오더, 제임스 등이 있었고, 이들의 직계 영향 하에 등장한 ‘매드 체스터(일명 미친 맨체스터들)군단-스톤 로지스.해피 먼데이스, 인스파이럴 카펫, 살란탄 UK-들은 바로 위에 언급한 세 밴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90년대 등장한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와 같은 쟁쟁한 브릿팝 그룹들 역시 바로 이 맨체스터 사운드에서 직,간접으로 그 음악적 영향을 흡수했다 볼 수 있다.
이 글에선 맨체스터 사운드를 대표하는 중요한 두 거목 스미스와 뉴 오더를 소개한다. 이들 그룹은 각각 ‘기타-팝’과 ‘신스 팝’이라는 음악 스타일을 통해 영국 내의 ‘인디 팝’ 운동의 선두를 담당한 밴드들이다. 이 두 밴드는 펑크와 90년대 브릿 팝을 연결 시키는 중요한 가교로서 거론되곤 한다. 앞으로 두 편으로 나눠서 진행 될 본 내용에서 먼저 ‘스미스’에 대해 알아본다.
The Smiths – 그들의 음악에 대해서…
스미스의 음악을 ‘기타 팝’이라고들 한다. 이는 당시 영국 내 대중 음악 상황과 연관되어서 붙어진 명칭인데, 당시 영국 팝 음악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스타일은 신시사이저와 시퀸서가 만들어 내는 전자음 위주의 음악이었다. 스미스의 음악은 당시 이런 주류 음악 산업의 배경 대한 신선한 대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팀의 핵인 보컬 모리시와 기타리스트 자니 마는 밴드의 지향점을 규정한다.
팀에서 작사와 보컬을 맡고 있는 모리시[본명 스티븐 패트릭 모리시(Morrissey);1959-]는 천부적인 언어 능력을 소유한 음악인 이전의 문학도이다. 그의 정신적인 우상이기도 한 제임스 딘을 닮은 창백한 이미지는 입 안에서 구르는 듯한 맬랑꼴리한 느낌의 보컬과 결합하여 기존 록 음악의 ‘샤우트’한 거친 록 음악 특유의 마초쉽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리시의 공연을 보면서 ‘록 스타’라는 이미지는 오간데 없고 ‘동네 이웃의 친한 오빠’라는 친근한 이미지로서 다가온다. 그저 길을 지나치다가 쉽게 마주치는 그런 수줍은 청년 말이다.
그의 노래는 멜로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리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모리시의 보컬은 결코 넘치거나 나서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제한된 음정 폭(3도에서 길어야 5도)에서 보컬을 구사한다.
그의 보컬은 스미스의 음악 전체에서도 일관된 성격을 유지한다. 그는 명백한 ‘팝’주의자이다. 그의 음악적 자양분은 멀리는 50년대 버디 할리가 보여준 록커빌리의 이미지에서 60년대 크루닝 창법을 통한 스탠더드 팝, 걸 그룹, 그리고 70년대 쇼킹한 스테이지 매너를 과시한 뉴욕 돌스와 데이빗 보위의 글램, 그리고 섹스 피스톨스의 폭력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리시의 가사 속엔 사춘기 소년의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는’듯한 수줍음(추억의 책갈피 마냥)과,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마냥 독설 어린 객끼, 여기에 문학도다운 탁월한 언어 감각이 오밀조밀하게 거미줄처럼 짜여 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팝 음악의 ‘남녀 상열지사’류의 가사도 모리시에겐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처절할 정도로 비수를 품은 폭력성은 그의 또 다른 면모이다. 그는 한 때 펑크 매니아라고 자처할 정도로 어린 사춘기 시절 펑크 음악에 매료됐었다. 뉴욕 CBGB 출신 뉴욕 돌스의 팬 클럽 회장까지 역임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 펑크의 출현을 반겼었다. 밴드 내에선 그렇게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노래를 부르던 그이지만 한편으론 ‘섹스 피스톨’이 보여준 ‘파괴의 본능’이 그의 가사 속에 녹아 있다.
기타와 작곡을 맡고있는 자니 마[본명: 조니 마어(Johnny Marr) ; 1963- ]는 밴드내의 음악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의 기타 소리는 록 음악 특유의 디스토션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크린 톤의, 맑게 울리는 기타 소리이다.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하나하나 튕겨가며내는 소리는 울리는 소리다. 그의 연주는 한음 한음이 또렷하다. 필요 없는 음의 낭비란 찾아 볼 수 없고 정갈하고 깔끔하다. 일렉기타 또는 어쿠스틱 기타를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그의 기타소리를 두고 평론가들은 ‘쟁글쟁글(기타의 소리를 두고 표현하는 말)한 기타 소리가 나는 기타 팝’이라고들 한다.
자니 마의 기타는 지저분하고 거친 록의 본연의 느낌과 거리가 있다. 크린 톤의 기타 음은 기존 밴드 내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쟁쟁한 기타리스트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단지 모리시의 보컬을 든든히 받쳐주는 반주자의 역할에 가깝다. 리듬 웍이 강조되는 그의 기타 연주는 롤링 스톤의 키스 리처드에 비견될 수 있다. 베이스 주자인 엔디 루어크와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의 연주 역시 파묻혀 버리지 않고 정확하고 또렷이 들린다. 과거 아트 록 그룹 록시 뮤직이나 재즈 록 밴드 스틸리 댄의 음악에서 느끼는 스튜디오 작업의 정확함과 치밀성이 스미스의 음악에도 살아있다. 각각의 소리가 조화롭게,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 무시됨 없이 명료하게 들려온다.
이런 자니 마가 제시한 스미스의 음악 방향은 모리시의 음악관과 판이하다. 자니 마의 연주에 밀도를 둔 치밀한 스튜디오 작업을 선호하는 반면 모리시는 ‘엘리트’ 적이며 권위적인 록의 기존 이미지’를 증오하는, ‘팝’ 순수주의자이다. 스미스만의 독특한 색깔이란 바로 이들 모리시와 자니 마가 보여준 ‘앤티 록’과 ‘앤티 팝’간의 묘한 긴장관계의 존재일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밴드 내의 국면은 분명 본격적인 영국 얼터너티브 씬의 출발을 알리는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